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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여러 가지 미스터리

관리자 │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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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말까지 접수된 피해사례 4099건 가운데 신고자의 거주지가 해외로 분류된 사례는 모두 10건이고, 이 가운데 2건은 사망이다.

신고된 국가는 미국, 캐나다,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여러 가지 미스터리를 안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17년 동안이나 사용되는 동안 왜 어느 누구도 제품의 위험성을 제기하지 않았나? 다시 말해 그토록 위험한 물건이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판매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딱 부러지는 답은 없지만 1994년 유공(현재 SK케미칼)이 처음 개발할 때 안전 여부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고, 2001년 영국 기업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하기 직전에 옥시싹싹의 살균성분을 프리벤톨R80에서 PHMG로 바꿨는데, 역시 호흡독성 안전점검을 하지 않았다. 옥시도 하지 않았고, 레킷벤키저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10여년 동안 유수한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비슷한 제품이 만들어졌지만 모두 이전의 제품을 단순히 카피했을 뿐 자체적인 안전점검을 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제품 안전점검 한 제조사 한 곳도 없어

연도별로 출시된 제품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94년 유공 가습기메이트, 1997년 LG생활건강 119가습기세균제거제, 1998년 옥시 가습기당번, 2001년 옥시레킷벤키저 뉴가습기당번, 2002년 애경 가습기메이트, 2003년 홈플러스PB, 2005년 롯데마트PB 및 엔위드(유일한 알약제품), 2006년 이마트PB, 2007년 헨켈코리아 가습기싹, 2008년 코스트코PB, 2009년 세퓨 등이다. 연간 60만개씩 잘 팔리는 가습기 살균제 자사 제품을 앞다투어 만들었지만 정작 제품 안전에 대해 신경 쓴 제조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2011년 8월 정부의 역학조사가 발표되는 기자회견장에서 이구동성으로 제기된 질문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외국에서의 피해는 어떠한가?’라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파악하기로 한국에서만 판매되었고 피해자도 한국에서만 발생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답이 돌아왔을 때 기자들은 웅성웅성했다. 정말 그런가? 하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정부의 답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가운데)과 피해자가 2016년 5월 옥시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의 주주총회장을 찾아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영국의 환경단체들도 함께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반은 맞다’는 것은 대기업과 다국적기업들이 나서서 20종류가 넘는 제품을 쏟아냈고, 국민의 20%가량인 1000만명이 사용했고, 수천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측면에서다. 한국에서만 대규모로 만들어 팔았고 한국에서만 피해자가 발생했다.

‘반은 틀렸다’는 것은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을 독일과 일본에서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멜리타’라는 이름의 제조업체가 ‘아클리마트’라는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았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유럽 사람들은 가습기 자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오사카 지역에서 판매되는 가습기 제균제라는 이름의 유사한 가습기 살균제 상품이 최소 2종 판매 중임을 필자가 직접 확인했다. 지난 5~6월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사회 이슈가 되었을 때 한두 차례 외신의 취재가 있었는데, 일본에도 가습기 살균제가 있다는 이야기에 일본 기자들의 반응은 ‘피해자가 나와야 기삿거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덴마크의 경우 자신들은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을 구경도 안 했지만 한국에서 PGH라는 살균제가 들어간 제품으로 여러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세계보건기구의 보고를 접하고 곧바로 자국 내 PGH 판매를 중단시키고 모든 관련 농업 제품들을 회수처리한 조치와 크게 대비된다. 덴마크 정부의 이러한 조치과정에서 PGH 제조판매사 두 곳이 폐업하기도 했다. 여하튼 독일과 일본에도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있지만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피해자도 보고되지 않고 있다.

재미교표 여성 미국에서 사용하다 사망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한국에서만 대규모로 만들고 소비된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과정은 최소 8개 국가의 외국기업들이 개입해 있는 국제적인 문제였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유럽계다. 우선 유럽의 영국 기업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해 옥시싹싹 제품을 팔았고, 역시 영국 기업 테스코가 홈플러스에서 PB상품을 팔았다. 아일랜드의 엔위드라는 알약제품은 완제품이 수입되었다. 홈키파로 잘 알려진 독일 기업 헨켈은 가습기싹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만들었다. 덴마크의 케톡스는 세퓨의 원료인 PGH를 한국으로 수출했다. 가습기 살균제 PB상품을 판 코스트코는 미국 회사다. 산도깨비라는 제품명의 PB상품을 판 다이소는 원래 일본 기업이다. 가장 많이 사용된 PHMG라는 살균제 원료의 일부는 중국에서 제조되어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한국에서만 발생했지만 해외에서의 피해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1948년생 재미교포 여성이 2007년 한인 마트인 김스전기라는 곳에서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구입해 사용하다가 2013년 65세로 사망했다. 이 여성은 2001년쯤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부터 가습기를 사용했다. 2004년부터 거주해온 2층집에서 이 여성은 건조한 LA의 기후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매일 가습기를 침대 옆에서 사용했고, 2007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7년여간 매년 9월쯤부터 이듬해 2월까지 주로 사용했다. 사용시간대는 밤 9시부터 아침 6시까지 취침시간대였다. 자녀들은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피해신고를 해온 유족은 애경 가습기메이트 구입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었고, 사망자가 사용하던 제품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유족은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한 동기에 대해 ‘가습기 청소가 안 되면 오히려 해롭다고 생각했고, 곰팡이 없이 깨끗하게 가습기를 사용하려고’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다른 사용자들과 같은 이유였다.

피해조사는 설문지를 우편으로 주고받으며 이루어졌고 전화통화로 확인되었다. 나중에 유족이 방한했을 때 직접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해서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고통 속에 돌아가셔서 원통해 했는데, 뜻밖에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임을 의심하게 되어 억울해서 신고했다고 말하며 유족들은 울먹였다. 판정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힘든 삶을 살다 가신 어머니의 사망원인에 대해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다 사망한 첫 해외사례였는데, 2014년 1차 정부 판정에서 ‘가능성 거의 없음’, 즉 4단계로 판정되었다. 이 사망 사례에 대해 국회 국정감사 의원들이 제조사를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현장조사에서 애경 측에 확인한 결과 자신들의 제품이 해외시장에 유통되는 경로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단다.

피해사례가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해외에서의 판매현장에 대한 신고는 있었다. 2013년 초 중국 상하이에서다. 남편 직장 관계로 상하이로 이주해 살던 환경운동연합의 한 회원으로부터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마켓 한편에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발견했다고 알려왔다. 당시는 이미 국내에서는 모든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회수된 시점이었지만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터였다.

 

흔한 예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수의 사망자가 나온 위험한 제품을 판매 금지 및 회수 완료 이후에 중국의 대도시 한인 거주지역에서 여전히 판매하고 있다는 건 큰 문제였다. 이 사례는 19대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가장 끈질기에 물고 늘어진 장하나 의원에 의해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되었다.

2016년 7월 말까지 접수된 피해사례 4099건 가운데 신고자의 거주지가 해외로 분류된 사례는 모두 10건이고, 이 가운데 2건은 사망이다. 신고된 국가는 미국, 캐나다,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다. 개별 사례에 대해 자세한 파악이 필요하지만, 실제 해외에서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다 피해를 입은 사례는 1건이고, 나머지는 모두 국내에서 구입해 사용하다 해외에 나가서 살면서 피해신고를 한 사례들이다.

 

국내의 경우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들이 이주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장소와 피해가 발생한 장소, 그리고 신고한 장소가 다른 경우들이 많아진다. 해외 피해신고의 대부분은 직장·학업 등의 이유로 국외로 나갔는데, 해외 현지에서 나타난 비염·천식·폐렴 등의 증상이 국내에서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 의심되는 경우들이다. 일부 특별한 경우는 아이에게 국내에서 폐질환이 발생해 고생하다가 주거와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로 이주해서 사는 사례도 있었다. 나중에 언론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가 질환 발생의 원인임을 의심해 신고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과 피해자가 2016년 5월 홈플러스를 소유하고 가습기 살균제 PB상품을 판매했던 영국의 슈퍼마켓 테스코 앞에서 책임을 묻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피해 사례도

2016년 5월 옥시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의 주주총회가 열렸을 때 어린이 사망 유족과 함께 항의방문을 갔었다. 이때의 활동을 도와준 교포 활동가에게 부탁해 런던 지역의 한인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이후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만나고 싶다고 했다.

 

뉴몰든이라는 지역으로, 런던에서 남쪽으로 기차로 30여분 가는 외곽지역이었다. 10여명의 교포들이 나와주었다. 한국에서 큰 사회문제화되었고 영국 방문의 전 과정에 대해서도 방송 취재가 세세하게 된 터라 교포들도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한인회의 대표를 맡았던 분의 이야기다. 2009년 겨울에 한국을 방문해 1~2개월 머무르며 오랜만에 친지와 친구들을 만났다. 한 친척집에서 머물렀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더니 친척이 가습기를 방에 틀어주었다.

 

병원에 다녔는데도 차도는 없었다. 런던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몸이 안 좋아서 아주 혼났다. 몸이 착 가라앉아서 거의 쓰러지다시피 힘들게 집으로 돌아왔고, 한동안 요양해야 했다. 왜 그런지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한국의 친척이 가습기에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던 것이 기억났다. 옥시싹싹 제품이었다 그의 경험담은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는 영국 교민들에게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다문화가정의 피해사례도 있다. 외국인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피해를 입은 경우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국인 남성인데,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살면서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고, 심각한 폐질환으로 호흡곤란을 겪고 있는 사례였다.

 

한국에 시집와서 살다가 남편과 아이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질환이 생겨 신고한 인도네시아 여성의 경우도 있다. 그녀는 매우 적극적이어서 피해자들의 활동 프로그램과 국회 모임에 여러 차례 참가하며 피해대책을 요구했다. 어렵게 한국생활에 적응해 살고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라는 문제로 남편과 아이가 아파서 고생하고 있다며 한국말로 신세한탄을 한참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는 생존환자로 신고되어 조사되었는데, 부인이 외국인인 다문화가정이었다. 그는 이후 악화되어 판정 이후 사망자로 분류되었다. 그의 부인은 한국으로 결혼해 왔다가 가습기 살균제로 졸지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경우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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