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의무화, 선진국은 시행 눈앞인데…국내 경제계 "시기상조" 전문가들 "ESG 공시는 필연적…업종별 세부지침, 데이터 플랫폼 구축 必"
국내 산업계와 경제단체가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산업·법률 전문가들은 ESG 공시제도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ESG 공시 의무화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세부적인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협의회 등 국내 경제단체는 25일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경제계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국내 ESG 공시제도의 정책 방향과 업종별 쟁점 사항 등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 경제계 “ESG 의무 공시…기업 부담 크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은 지난 4월 30일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을 발표했다.
지난 2023년 6월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의 기준이 되는 IFRS S1(일반 공시), IFRS S2(기후 관련 공시)를 발표한 이후, 세계 각국은 이를 토대로 기업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제화에 돌입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한국회계기준원 KSSB도 ISSB 공시기준에 입각한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공개 초안’을 발표한 것이다. KSSB는 8월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검토를 거쳐 확정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경제·산업계는 국내 ESG 공시 의무화에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지난 21일 ‘ESG 공시 의무화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한구회계기준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한경협은 지난 3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103개를 대상으로 ESG 공시제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유로 제시했다. 한경협의 조사에 따르면 지속가능성 공시제도 도입 시기에 대해 ‘2029년 이후’가 돼야 한다는 기업이 27.2%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2026년 이후’ 25.2%, ‘2027년 이후’ 23.3%, ‘2028년 이후’ 22.3%, ‘공시 자체가 어려움’ 2.0% 순으로 나타났다.
한경협은 “기업마다 준비상황이 천차만별이며 ESG 공시의무화 1차 적용 대상인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들도 5년 이상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선진국도 아직 ESG 공시 기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데다 글로벌 투자기관도 반(反) ESG 의견을 보이는 등 국제적 흐름이 계속 변하고 있는 상황에 성급하게 공시기준을 확정하는 것은 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KSSB는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이 국내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부담이 되지 않도록 국제 기준과 정합하며, 국내 기업의 공시역량과 준비상황을 균형있게 고려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KSSB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은 글로벌 ESG 공시기준이라고 불리는 ISSB의 공시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의무공시의 도입시기와 공시형식, 스코프3 의무화 등 중요 사안에 대한 논의가 향후로 밀리면서 산업계와 경제계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 법률·산업 전문가들 “ESG 공시 의무는 필연적…해답은 디테일에서 찾아야”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단체들은 25일 합동으로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경제계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패널들은 ESG 공시 의무화는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전망했다. ‘KSSB 기준 공개초안 주요 내용 및 쟁점’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김정난 법무법인 화우 그룹장은 “일부 기업과 경제계가 국내 ESG 공시 의무화에 부담을 느끼며 ESG 공시 의무화 도입 시점을 2029년 이후로 미뤄야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조기 시행에 찬성하는 기업도 존재한다”며 “EU 등 선진국들은 ESG 공시 초안 발표 이후 1~1.5년 이내 시행 중으로 늦어도 2026~2028년 공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공시 시점을 충분히 논의하고 생각해 봐야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그룹장은 “EU와 미국처럼 매출규모, 종업원 수 등을 고려하고 특정 공시 항목의 충분한 유예기간 반영이 필요하다”며 “규제적 관점에서 공시 항목을 추가하기 보다는 ESG 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 자발적 공시를 촉진하는 지원책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기관 지속가능성 공시 이슈 및 대응’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유인식 IBK기업은행 ESG부장 역시 “TCFD(기후 관련 재무 공개 태스크포스) 지침에 의한 공시 대응은 필수이며, ESG 공시 의무화 여부 논의는 이제 무의미하다”고 단언했다.
유 부장은 “금융기관은 타 산업군과 달리 지속가능성 공시에 있어 작성자 관점과 사용자 관점의 시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며 “작성자적 관점 핵심 이슈는 금융 배출량, 그린워싱이며, 사용자적 관점 핵심 이슈는 TCFD 지침의 기후리스크와 기회 관련 기업 정보 요구와 활용”이라고 설명했다.
‘제조업 관점 ESG 공시제도 의견’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이준희 법무법인 지평 센터장은 “국내 ESG 공시기준 공개 초안이 큰 틀의 원칙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데, 수많은 밸류체인으로 구성된 제조업의 경우 이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 센터장은 “ESG 공시 의무화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업종별 특성 및 이슈를 감안한 구체적인 세부지침, 가이드 등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산업별 1, 2차 협력사 등을 포함한 기업의 의견이 중심이 되는 Bottom Up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ESG 공시를 돕는 ESG 데이터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통·물류업 관점 ESG 공시제도의 의견’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문상원 삼정KPMG 상무는 “유통·물류 업계는 다수의 협력사가 다수의 유통사에 상품을 공급하는 복잡한 구조로 협력사 배출량 정보 파악, ESG 데이터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스코프3 배출량 공시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구축한 ESG 데이터 플랫폼 ‘Gprnt'와 같은 ESG 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에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