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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기록 '엄마, 숨이 안 쉬어져'](17) 더 소외된 피해자는 군소 제품 사용자들

관리자 │ 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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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가족이 사용한 엔위드(N-with)는 알약 형태다. 알약 형태이다 보니 사용자들은 마치 일반알약처럼 여겨 인체에 안전하고 의학적 효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를 해온 사람들 가운데는 의사, 간호사 등 질병과 건강에 대해 잘 아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전북 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김미영씨(가명)도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2010년 둘째 아이를 가졌다. 임신 직후인 2010년 10월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임신 때 감기 등 호흡기질환에 걸리면 함부로 약을 사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가습기를 사용했다. 코나 목안 점막이 건조하면 감기 등에 걸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가습기 사용자들이 옥시나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사용한 것과 달리 김씨는 엔위드라는 알약 형태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사용했다. 가정에서 쓰는 많은 생활용품을 남편이 인터넷을 통해 구매해 왔고, 이 엔위드도 남편이 옥션에서 구매했다.  

 

자신이 간호사였지만 이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김씨는 임신 6~7개월 때부터 숨이 많이 찬 증세로 고생을 했다. 이 시기면 별로 숨이 차지 않을 때인데도 자주 숨이 찬 것을 이상하게 여겨 임신 관리를 받던 대학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큰 문제가 없다며 더 안 좋으면 오라고 했다. 초음파 상으로는 아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2011년 4월 아이를 낳았다. 산후조리원에서 산후 몸조리를 했다. 이때부터 계속되는 기침과 가래와 함께 열이 났다. 특히 가래가 많았다. 감기약과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무려 6개월간 지속됐다. 하지만 의료진은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2016년 7월 27일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특위 현장조사가 열린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진실'이란 꽃말의 퐁퐁소국을 들고 조사위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간호사였지만 제품 유해성 알지 못해 

 

기침·가래로 고생한 김씨를 진료한 동네의원은 혹 천식일 수도 있겠다며 상급병원 진료의견서를 써주었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 피를 뽑아 검사도 했다. 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면역력이 약해서 그런가보다”라고 했다. 그는 2011년 10월쯤 뉴스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접했다. 그때서야 자신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의문스런 일이 가습기에 넣어왔던 엔위드 때문이라고 직감했다. 

 

김씨는 그 뒤로 감기에 걸리면 늘 쌕쌕거린다. 호흡기전문의인 동네 내과 의사는 천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기관지확장제 처방을 해주었다. 술·담배도 전혀 한 적이 없는 자신이 천식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둘째 아이도 가습기 살균제로 몸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올해 여섯 살로 후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예정인 아들은 또래 가운데 키가 너무나 작고 몸집도 왜소하다. 그래서 임신 중 태아로 있을 당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태아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아이는 태어난 얼마 뒤부터 콧속에서 그르륵 소리를 냈다. 너무 어려 가래를 잘 내뱉지 못해 감기에 걸리면 늘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가래 해소약을 몸에 달고 살았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의 키와 몸집에 매우 예민하다. 김씨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키가 작으면 ‘루저’라고까지 비아냥대지 않는가. 그래서 내년에는 둘째를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데려가 성장클리닉에서 진찰과 치료를 한 번 받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간호사 직을 그만두었다. 야근을 자주 해야 하는데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거나 할 때 힘들어 한다. 하지만 얼굴에 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어서 겉보기에는 멀쩡하다. 직장 동료나 상사가 김씨가 꾀병을 부리거나 사소한 증상을 부풀려 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쉬고 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가래와 기침, 천식으로 고생을 해 목소리마저 변했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은 다른 피해자에 견주어서는 심하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둘째를 가졌을 때 큰 아이는 외가에 보냈기 때문에 그래도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해 한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피해자 인정을 받지 못해 화가 나기도 한다. 아이와 자신 모두 4단계 판정, 즉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관련성이 거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천식이나 비염 등은 아직 판정 대상 질환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특별법과 피해 인정 범위 확대에 그나마 일말의 기대를 걸고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지난 추석 때 서울역 앞에서 징벌적 손해배상법과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씨 가족이 사용한 엔위드(N-with)는 알약 형태다. 알약 형태이다 보니 사용자들은 마치 일반 알약처럼 여겨 인체에 안전하고 의학적 효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다.  

 

클라나드라는 회사가 아일랜드의 메덴텍이라는 업체에서 수입해 2005년부터 팔았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7년간 14만개가 팔렸다. 알약 50개들이 또는 100개들이 형태로 팔렸다. 하루에 하나 정도를 넣어 사용하기 때문에 50개들이는 약 두 달간, 100개들이는 석 달 남짓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엔위드 제품에서 살균 능력을 발휘하는 성분은 이염화이소시아눌산나트륨(NaDDC)이었다. 이밖에도 중탄산나트륨, 아디핀산, 젖당분말, 오렌지향 등이 들어 있다. 

 

오렌지향 넣어 신선한 향에 끌리도록 

 

옥시레킷벤키저가 자사가 개발·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라벤더향을 넣어 소비자들을 향기로 유혹했다면, 클라나드사는 엔위드에 오렌지향을 넣어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용할 때 신선한 향에 끌리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엔위드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이 제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기억하고 있다. 

 

인터넷과 SNS에는 당시 엔위드 사용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한 젊은 여성은 돌이 된 아이가 있는 친구가 보내준 엔위드를 고마워하면서 엔위드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감사 인사를 했다. “넘 고맙당^-^ 가습기 닦기 싫어서 구석에 방치해 두었는데 다시 닦아서 이거 넣고 써야겠당 ~오렌지향도 나는 거네~ ㅎㅎㅎ 으~~ 좋아 좋아^0^ 으히히히히~~~~ 덤으로 뭘 이렇게 챙겨줬어~.” 또 다른 젊은 엄마는 “오렌지향 엔위드. 2010년 겨울에 한 통은 사용한 듯해요. 방안 가득 오렌지향이 퍼지면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뿌듯해 했어요. 또 무언가가 수면 위로 올라올까요. 시작에 불과하리라는 불길함에 더 참담한…”이라고 말했다.  

 

엔위드를 사용한 팔로어는 “그 무렵 집에 어린 아기가 있어서 가습기를 열심히 틀었다. 엔위드 살균제를 구입했는데 어느 날은 넣고 어느 날은 잊고 안 넣었다. 살균제를 넣지 않은 날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맘이 안 좋았다. 이번 사건은 우리 모두의 일, 지상의 세월호가 맞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에서 선전하는 엔위드의 안전성과 효과를 믿고 구입했다. 당시 인터넷쇼핑몰에는 ‘가습기 살균 및 냄새 제거, 이끼 및 물때 방지, 가습기 소독, 세균 걱정 끝! 발포정이며 1ℓ의 물에 용해 시 NaDCC가 60ppm 용해되어 있는 수증기가 분무되어 습도 조절과 실내 세균 및 바이러스까지 살균이 가능하며… 인체에는 안전합니다. 50정 또는 100정 중에 선택하세요’라는 안심 문구로 젊은 소비층을 공략했다. 

 

가습기 살균제 가운데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알약 형태의 엔위드 제품. 피해 신고자는 많지 않지만 신세대 가정을 중심으로 일부가 고통을 겪었다. / 다음 홈쇼핑 

 

엔위드의 살균 주성분인 NaDCC는 유럽 국가에서는 소나 돼지가 먹는 물을 소독하는 소독제로 쓰였다. 일반 염소계보다 곰팡이와 세균 살균 효과는 우수하면서 쉽게 분해되고 비교적 안전하여 식물과 식품 및 의학에서 소독제로 사용돼 왔다.

보건복지부가 2009년에 고시한 식기세척제 기준에 보면 이 성분은 학교 단체급식 식기세척제에 사용할 수 있는 물질로 고시돼 있다. 세정제 내지 세척제, 소독제와 같은 용도로 사용될 경우 인체 안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사람이 직접 흡입하는 형태여서 독성과 유해성 측면에서 천양지차가 날 수 있다. 호흡기로는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3대 성분은 PHMG, PGH, CMIT·MIT이다. 이 밖에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사용된 성분은 엔위드의 염소계인 NaDCC, 에탄올을 사용한 아토세이프, 그리고 산화은과 이산화규소 따위를 살균성분으로 한 옥시 고체형, 에코후레시 가습기항균볼, 모던라이프 가습기살균볼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에탄올을 사용한 제품 사용자는 건강문제를 호소한 사례가 없으나 기타 다른 제품 사용자 가운데는 그 피해신고자 수가 다른 3대 성분 제품에 견주어서는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가벼운 피해이거나 그 수가 적어 언론, 정부, 시민단체 어디에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김씨 가족을 포함해 이들의 호소나 고통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Q&A / (4) 신고 안 된 피해자는 얼마나 될까?

2016년 12월 20일까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는 모두 5298건이다. 이 중 20.8%인 1101명은 사망자이고 4197명은 생존환자다. 피해신고자 10명당 2명이 사망한 셈이다.
 
2011년 9월 이후부터 2015년 말까지 4년 4개월 동안 이뤄진 신고는 1282명이었고, 이 중 사망자는 227명이었다. 그런데 2016년 4월 말부터 피해신고가 재개된 후 폭증하여 8개월 동안 4020명이 신고됐다. 전체 피해신고자의 75.9%가 2016년 8개월 동안에 집중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신고된 피해자가 전체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첫 번째 연구결과는 이렇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질병관리본부는 수도권의 한 도시에서 일반인구를 대상으로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 사용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37.2%가 가습기를 사용했고, 18.1%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5년 12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ARS-RDD 휴대폰 여론조사에서 22%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과 공동으로 기획해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한 결과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가 중단된 2011년 말 이전인 2010년의 인구가 4941만명이므로 두 가지 조사결과인 18.1~22%를 전체 인구로 추산하면 약 894만~1087만명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인구가 된다. 2010년 한 해 동안의 사용인구이고, 가습기 살균제가 1994년부터 판매돼 2011년까지 17년 동안 점차로 제품수와 판매량이 증가해 왔으므로 실제 사용인구는 더 많다.

앞의 여론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의 20.9%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중 건강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옥시레킷벤키저 측이 호서대에 의뢰한 노출평가 실험결과 60번 중에서 두 번이 고농도로 조사되었다. 이를 근거로 잠재적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추산하면 앞서 제시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894만~1087만명의 3.3~20.9%인 29만~227만명이 고농도 노출자 또는 건강피해경험자로서 잠재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까지 신고된 5298명은 잠재적 피해자의 0.2~1.8%에 불과한,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근거는 10월 말 한국독성보건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인하대 임종한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다.
임 교수는 OECD 국가들은 모두 폐렴 사망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유독 한국만 증가해서 살펴보니 가습기 살균제 판매기간 동안의 전체 폐렴 사망자 7만명 중 20%가량인 2만명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폐렴 사망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다.
임 교수는 정부의 폐 이외의 건강영향 연구조사 책임자다. 임 교수는 폐 이외에도 천식과 비염, 특발성 폐섬유화, 자가면역질환, 간독성, 신장독성, 폐암, 유산 및 조산 등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의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고 했다. 앞의 29만~227만명이 잠재적인 피해자라는 추산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사건이 알려진 지 6년째인 올해 들어서 전체 피해신고의 75.9%가 이뤄졌다는 점도 아직 신고되지 않은 피해자가 많다는 점을 설명해주는 근거가 된다.


2015년 말 정부의 담당부서인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를 2016년부터는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항의하자 환경부 관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언론에 많이 보도된 경우가 어디 있느냐, 피해자들은 거의 모두 신고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환경부는 책상에 앉아 걸려오는 피해신고만을 접수하고 있었을 뿐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요양원과 같이 가습기 살균제를 많이 사용한 곳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들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최대의 사회 이슈로 불거졌고 작년까지 접수된 피해자의 3배가 넘는 신규피해가 신고되었다. 아직 다수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신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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