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기후헌법’ 개정으로 미래세대 권리 보장해야
한상운 박사(한국환경법학회 고문)한상운 박사(한국환경법학회 고문)기후위기가 전 지구적 위협으로 대두된 가운데 현행 헌법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기후환경 관련 헌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시민사회와 학계, 정치권에서 기후헌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저출생, 고령화, 양극화 같은 구조적 위기가 깊어졌고,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같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서 헌법을 제때 손보지 못해 현실과 헌법의 분리가 심화되어 헌법에 시대와 조응하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이와 같은 헌법개정의 필요성에 정치권은 물론 국민 대다수는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이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도전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그리고 미래세대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헌법불합치 결정, 기후환경 헌법 개정의 촉매제헌법재판소는 지난해 8월 청소년·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기후소송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0년 이후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아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결정으로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해당 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헌재의 결정은 미래세대의 권리를 고려하는 중요한 판단이었으나,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아 ‘반쪽짜리’ 판결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독일은 2021년 기후소송에서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조차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진일보한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음에도, 독일과 같은 수준의 판단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국내외 기후헌법 개정 논의 활발세계 여러 국가들이 이미 헌법에 기후위기 대응을 명시하고 있다. 알제리는 헌법 전문에 “우리 인민들은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며 미래세대를 위해 자연환경을 보호”한다는 문구를 추가했고, 코트디부아르도 “미래세대를 위하여 기후 보호 및 건강한 환경의 유지에 기여”한다는 구절을 헌법에 담았다. 에콰도르는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국내에서도 기후헌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1월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라는 주제로 연속 세미나를 열었고, 지난 2월에는 국회 기후위기 탈탄소 경제포럼, 한국환경법학회와 재단법인 지구와사람이 공동으로 ‘탄소중립 시대의 기후 생태 헌법 개헌 방향과 과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환경재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이미 2021년에 헌법 1조 3항에 “대한민국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를 지닌다”라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기후헌법 개정의 핵심 과제기후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여러 핵심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먼저, 헌법 전문에 지구 생태계와 자연환경 보호, 지속 가능한 발전, 미래세대 등의 가치를 명시하고, 환경권을 세대 간 연대 정신에 기반해 생태적·사회적·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할 의무로 구체화해야 한다. 자연과 전체 생명체를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 지구환경과 생물다양성 및 기후를 온전하게 지키고 물려주어야 하며, 국가는 지구환경과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으로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 환경 변화와 기후헌법 개정의 가능성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정치 환경이 크게 변화했다. 이는 기후·환경정책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전담국 신설, 산업계 책임과 기여를 고려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기후 투자 활성화를 위한 별도 기구 설립, 기후공시 의무화 등 국내 주요 기후·환경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정부 부처 개편 논의에서도 ‘기후경제부’ 또는 ‘기후에너지부’, ‘국토환경부’ 등 정부조직 개편 및 신설 가능성과 더불어 통제 및 감독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환노위의 분리 등 국회의 소관상임위원회의 신설 개편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컨트롤타워 개편에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기후헌법 개정 논의를 더욱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2024년 5월21일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변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등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청소년기후행동시민사회 주도의 헌법 개정 운동 필요기후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청소년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기후헌법 개정이 단순한 문구 삽입을 넘어, 기후위기를 야기한 탄소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탈탄소 사회의 재구성을 위해 다양한 각계 시민의견을 바탕으로 개정안을 도출해야 한다. 이는 기후위기가 민주주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으며, 국민소환제, 시민 참여 확대 등 시민 주도의 정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대선일인 6월 3일 조기 대선 과정에서 어떤 개헌이 필요한지 후보들이 책임있게 얘기하고 충분한 토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 개헌안을 국회와 함께 사회적 논의를 통해 내년 지방선거와 결부해 전면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로 가는 게 지금 시점에서는 최적이라고 본다.기후헌법 개정은 시대적 요구기후위기는 더 이상 개별 이슈가 아닌,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핵심 의제가 됐다. 기후헌법 개정은 단순히 헌법에 기후 관련 문구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 우리 헌법이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원칙을 담아내고,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정부와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단순히 법적 의무로만 소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근본적인 체계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는 헌법 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기후헌법 개정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고자 하는 현세대 우리의 책임이자,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